64회 동창회 관리자

 

   

 

 

 
작성일 : 11-07-09 22:25
진교준 시인의 '설악산 얘기'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891  

 

 

                                       

                  설악산 얘기

 

                            - 진 교 준 

 

 


나는 산이 좋더라.

파란 하늘을 통채로 호흡하는

나는 산이 좋더라.

멀리 동해가 보이는

설, 설악, 설악산이 좋더라.



산에는

물, 나무, 돌...

아무런 오해도

법률도 없어

네 발로 뛸 수도 있는

원상 그대로의 자유가 있다.

고래 고래 고함을 쳤다. 나는

고래 고래 고함을 치러

여기까지 온 건지도 모른다.



산에는

파아란 하늘과 사이에

아무런 장애도 없고

멀리 동해가 바라뵈는 곳

산과 하늘이 융합하는 틈에 끼어 서면

무한대처럼 가을 하늘처럼

마구 부풀어 질수도 있는 것을....



도토리를 까 먹으며

설악산 오솔길을 다리 쉼 하느라면

내게 한껏 남는 건

머루 다래를 싫건 먹고픈

소박한 욕망일 수도 있는 것을...

자유를 꼭 깨물고

차라리 잠들어 버리고 싶은가.



깨어진 기와장처럼

오세암 전설이 흩어진 곳에

금방 어둠이 내리면

종이 뭉치로 문구멍을 틀어 막은

조그만 움막에는

뜬 숯이 뻐얼건 탄환통을 둘어 앉아

갈가지가 멧돼지를 좇아간다는

포수의 이야기가 익어간다.

이런 밤엔

칡감자라도 구어 먹었으면 더욱 좋을 것을.

(주: 갈가지 = 강원도방언으로 범새끼)



백담사 가는 길에 해골이 있다고 했다.

해골을 줏어다 술잔을 만들자고 했다.

해골에 술을 부어 마시던 바이런이

한 개의 해골이 되어버린 것 처럼

철학을 부어서 마시자고 했다.

해. 골. 에. 다. 가....



나는 산이 좋더라.

영원한 휴식처럼 말이 없는

나는 산이 좋더라.

꿈을 꾸는 듯 멀리 동해가 보이는

설악

설악산이 좋더라.

 


 

 

 산을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 설악산은 ‘산중미인’으로 통한다. 지리산이 그 깊고도 넓은 품으로 모든 이들을 포용하는 ‘어머니의 산’이라면 설악산은 ‘산꾼’들을 매료시키는 강렬하고도 현란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산이다. 산에 갓 입문한 젊은 산악인들은 한 철이라도 설악에 다녀오지 않으면 ‘상사병’이 날 정도로 설악산은 이 땅의 ‘산꾼’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이기도 했던 설악산에는 한때 해골이 즐비했는데, 전후 이곳을 대담하게도 고교생의 신분으로 찾은 이가 있었다. 바로 서울고교 2년생이었던 진교준 시인이다. 그리고 그 체험을 ‘경희백일장’에서 ‘설악산 얘기’라는 시로 써냈고, 당시 국어 교사로 재직하던 조병화 시인의 눈에 들어 ‘장원’으로 뽑혔다. “나는야 설, 설악, 설악산이 좋더라”로 시작되는 진교준 시인의 ‘설악산 얘기’는 오늘날까지 40-50대 산꾼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으며, 술자리에서 노래 대신으로 ‘낭송’하는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