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조 산행기>

 이번 산행은 우리 경기고 64회 40주년 기념으로 제주에서 골프,등산,낚시 등 친구들이 하고 싶은 취미대로 진행하기로 한 프로그램 중 등산에 관심을 가진 우리 64회 친구들끼리 이루어진 산행이었다. 그동안 기산회 활동에 참여한 친구들과 또 자기나름대로 산행에 관심을 가졌던 친구들 모두 모여 한라산을 오르기로 한 것이다. A조는 성판악-백록담-관음사 18.3km의 산행을 하고 B조는 영실-윗세오름-어리목 8.4km의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아침 6시 일어나서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캐슬렉스'골프장 숙소에서 어제밤 늦게까지 친구들과 너무 좋아 마신 술을 깨우며 해장국을 아침식사로 하고 오전 7시 오늘 한라산을 오르기로 한 52명의 친구들을 태운 두 대의 버스는 '캐슬렉스'를 출발하였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전세낸 두 대의 버스는 성판악에 도착하였다. 모두 내려 성판악매표소 입구에서 단체사진도 찍고 물병도 하나씩 제공받고 오늘 일기예보에 오후 늦게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 일회용 비닐 우비까지 A조는 지급받았다. 잠시 후 윗세오름을 오르는 B조가 영실로 출발하였고 A조는 숨을 고른 후 오전 8시 5분 성판악매표소 자리를 출발하였다. A조 출발인원은 26명이다. 선두그룹은 이규광 군이, 후미그룹은 유재윤 군이 그리고 중간 그룹은 내가 책임을 지기로 하고 3대의 무전기를 각 그룹 책임자가 휴대하기로 했다.

성판악에서 백록담까지는 9.6km이다. 성판악이 해발 750m이고 백록담 동릉이 1933m이니 약 1200m의 고도를 오르게 되어있다. 설악산 오색이 약 500m이고 대청봉이 1708m이니 거의 같은 고도를 오르는 데 오색-대청봉의 산행거리는 5km밖에 안된다. 그러니 거의 두배나 되는 산행거리이니 얼마나 완만하겠는가. 동네 아줌마들도 쉽게 오르는 산행길이 된 것이다. 누구나 오르는 산행길이 되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이 한라산 성판악-백록담 코스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한라산국립공원 측은 길 거의 전부를 나무계단,돌계단으로 도배를 했다. 원래 돌이 많은 산이지만 산행길 보호를 위해 이런 인공물들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다만 성판악에서 진달래대피소까지는 거의 조망이 없다. 성판악을 출발하여 3.5km 지나면 삼나무 조림지 속밭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서 400m 정도 더 가면 화장실과 조그마한 약수가 있다. 여기까지 오느라면 성판악에서 거의 한 시간을 지나게 된다. 여기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1.5km를 25분 정도 오르면 무인 사라대피소에 이르게 된다. 또한 대피소 8분전에 사라약수를 지나게 되는데 이 곳이 이 코스 마지막 식수원이다. 한라산의 계곡은 대부분 건천으로 물이 흐르지 않는 바윗덩어리 골짜기이지만 화산구이기에 물이 계곡 바닥 안으로 흘러서 계곡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사라대피소 왼쪽으로 보이는 기생화산의 하나인 사라오름(1324m)은 그 안 분화구가 고산습지이며 물이 고여있다. 제주도에는 기생화산이 만든 오름이 총 368개 있고 그중 9개의 오름이 분화구에 물이 있다 한다. 백록담이 물을 담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분화구로 이 밖에도 사라오름과 물차오름 그리고 물영아리오름 등의 분화구에 물이 있다고 한다.사라대피소에서 1.7km를 40분 정도 올라서 진달래대피소에 도착하였다. 지금쯤 진달래가 만발하였으리라는 기대는 잠시, 아직 넓은 진달래밭의 일부만 피었고 나머지는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 특유의 진한 색상의 아름다운 진달래의 자태는 곳곳에서 보는 우리들의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적셔 주었다.

해발 1500m의 진달래대피소에서 진달래와 함께 선두와 중간그룹 일부 대원들의 기념사진을 찍고 백록담을 향해 10시 15분에 출발하였다. 35분 정도 지나서 주변이 확 트이면서 조망이 전개된다. 앞에 백록담 동릉 쪽이 전개되고 해발 1800m에 이르게 되면서 급경사 나무계단이 시작된다.백록담을 올라서는 화구벽 외곽은 경사가 급하다. 제주의 혹심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계단을 오르는 우리 몸은 우측으로 심하게 기울기 시작한다. 계단 좌측 끝에 붙어서 걸어보면 어느새 계단 중간으로 밀려서 오르고 있다. 그러나 날씨가 그렇게 춥지가 않아서 계단 중간 중간에 서서 뒤로 전개되는 아름다운 제주의 수많은 오름과 바다를 조망할 수가 있었다. 계단을 오르는 좌측으로는 제주도의 남쪽이 되어서 서귀포 부근의 모습이 전개되고 그 위로 하얀 구름 떼가 우리 발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구름 위를 지나는 한 폭의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하다. 어느덧 해발 1900m 표시석을 지나 동릉정상에 11시 15분에 도착하였다. 성판악을 출발한지 3시간 10분이 되었다. 선두그룹과 중간그룹 일부의 10여명이 먼저 도착하여 백록담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였다. 몸을 가누기 힘든 세찬 바람을 맞으며 20여분 정도 지체하면서 후미그룹과 시간차를 줄이기도 하고 백록담 부근의 관광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기념촬영하는 백록담 동릉 정상은 1933m이고 그 맞은편 서릉정상이 1950m이다. 우측의 서북벽은 장구목에서 백록담을 오르던 코스이나 지금은 자연휴식년제로 등산로가 폐쇄되어있다.

동릉정상 아래에 있는 관음사 8.7km-성판악 9.6km 이정표를 뒤로 하고 11시 35분에 하산을 시작했다. 목로를 따라 내려가면 금새 살아 천년,죽어 천년이라는 구상나무 군락이 우리를 맞이한다. 갖가지 형상의 멋진 구상나무들이 우리의 발길을 붙잡는다. 좌측으로 백록담 서북벽에서 이어지는 장구목 능선의 웅장함을 조망하며 하산하다가 구상나무를 배경으로 친구들의 멋진 포즈를 카메라에 담고 잠시후 1850 고지 부근에서 민생고를 해결했다. 아침에 본부에서 나누어준 도시락을 펼치고 정답게 이런저런 이야기의 꽃을 피우며 불고기,생선 등 훌륭한 메뉴의 도시락을 비웠다. 바람이 여전히 거세어 한기를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점심식사 시간 20분을 제외하고 동릉정상에서 50분 정도 주변 경관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걸어서 용진각에 도착했다. 그런데 용진각대피소가 없다. 처음에는 나도 위치 파악에 혼선을 가졌지만 용진각대피소는 작년 9월 제주를 강타한 태풍 '나리'로 탐라계곡의 물이 불어나면서 역류현상으로 그 튼튼한 돌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선두그룹과 합류하여 다시 상승하는 길을 올라 삼각봉 입구로 향했다. 개미목과 개미등을 따라 숲속에 갇힌 지리한 길을 따라 하산을 계속하였다.

삼사십년전에는 나무가 거의 없는 날등의 개미등을 오르느라 엄청 땀을 많이 흘렸는데 그동안 한라산의 생태계도 일부가 변하여 개미등에도 숲이 들어선 것이다. 용진각에서 삼각봉 입구를 지나 지리한 길을 1시간 20분을 내려오니 탐라대피소였다. 용진각에서 여기까지 3.6km이고 여기에서 관음사안내소까지 3.2km라는 이정표가 서있다. 기압계를 들여다보니 계속 하강하고 있다. 곧 비가 올 상황이다. 후미그룹을 무전기로 불러본다. 후미그룹 5명의 위치는 대략 선두그룹과 1시간 반, 중간그룹과는 1시간 정도 떨어져 있었다. 후미대장 유재윤 군에게 분발을 요구했다. 언제나 명랑한 우리 유재윤 후미대장이 알았다고 답신을 한다. 친구들을 위해 정말 고생이 많다. 이제 평지길을 부지런히 가는 일만 남았다. 중간에 메마른 바위들로 가득찬 탐라계곡을 끼고 적십자대피소 구린굴 등을 지나며 관음사안내소에 도착하였다. 선두그룹은 2시 55분에 도착하여 6시간 50분 걸려 한라산 산행을 마쳤고 그 뒤 중간그룹이 속속 도착하였고 40분 후에는 길게 퍼져있었던 중간그룹이 모두 도착해 19명이 선두버스에 올라 '캐슬렉스' 숙소로 향했다. 이때까지는 모두 비를 맞지 않고 산행을 마쳤다. 버스가 떠나면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이규광 선두대장과 나는 등산로출구 앞 평상에 비를 맞으며 막걸리 몇병을 갖다놓고 후미그룹을 기다리기로 했다. 비는 점점 거칠게 내리더니 급기야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 우리 후미그룹 친구들은 어떨까? 선두버스가 출발한지 한시간 조금 못미쳐 드디어 모두 도착했다. 모두의 얼굴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늠름하다. 아, 한라산을 닮은 우리 경기 64회 친구들의 의젓함이여...

<한 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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